부산 대연동 못골에는 왜 못이 없나 — 못은 셋이었고 1970년대에 다 메워졌다

부산 대연동 못골에는 왜 못이 없나 — 못은 셋이었고 1970년대에 다 메워졌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는 못골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못골시장, 못골장터, 도시철도 못골역, 못골로와 못골번영로. 편의점 상호까지 못골제일점입니다.

그런데 정작 못이 없습니다.

부산 대연동 못골 걷기 — 못골에 못이 없는 이유
부산 대연동 못골 걷기 — 못골에 못이 없는 이유

이 글은 위 영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옛 사진과 지도를 멈춰서 볼 수 있게 정리한 것입니다. 걸으면서 알아가는 순서는 영상 쪽이고, 여기서는 답과 근거를 먼저 놓았습니다.

못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황령산 남쪽 기슭은 동쪽으로 지형이 기울어 있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골짜기를 따라 흐르다 자연스럽게 고였고, 그렇게 생긴 못이 세 곳이었습니다.

이름위치내력
아랫못(생천언)지금의 대연초등학교 부근가장 크고 오래된 못. 신라 때 쌓았다는 추정이 있다
윗못아랫못 위쪽 골짜기1930년 일제가 수리조합을 만들며 제방을 쌓아 새로 만듦
고동골 못고동골 일대마을이 커지며 이 못 주변까지 논밭이 넓어졌다

못골 마을은 600여 년 전 죽산 박씨가 아랫못에 자리를 잡으며 시작됐고, 뒤이어 들어온 사람들이 고동골 못 주변까지 논밭을 넓혔다고 전합니다.

고동골이라는 이름은 지도에도 남아 있습니다. 1956년 지형도의 大淵池 왼쪽에 古洞谷이 적혀 있습니다.

1956년 지형도에 大淵池·池谷·古洞谷이 한자와 한글로 표기된 부분
1956년 1:50,000 지형도. 大淵池(대연지) 옆에 池谷(지곡), 왼쪽에 古洞谷(고동골)이 함께 적혀 있다.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문헌에 남은 이름은 생천언, 지도에 적힌 이름은 대연지

『동래부지』(1740)는 이 못을 생천언(生川堰) 으로 적습니다. 언(堰)은 둑이라는 뜻이고, 조선 후기 지리지는 저수지를 보통 이렇게 불렀습니다. 별칭이 바로 아랫못입니다.

생천언은 동래부 남쪽 20리 되는 곳에 있다. 방죽의 길이는 181척이며 폭은 125척이다. — 『동래부지』(1740) 제언조

1765년 『여지도서』는 둘레 373척(약 113m), 물 깊이 6척 5촌(약 1.97m)이라고 적습니다. 조선 말까지 수치가 그대로인 것을 보면 오래도록 관리되던 못이었다는 뜻입니다.

축조 시기는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산부사 원고』(1938)는 쌓은 방식으로 보아 신라 때 만든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한편 국토지리정보원이 1956년에 펴낸 1:50,000 지형도에는 못 자체에 大淵池, 한글로 대연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바로 옆은 池谷, 우리말로 못골입니다. 문헌상 이름과 지도상 이름이 어긋나는 게 아니라, 조선 지리지의 이름과 근대 지형도의 이름이 층이 다른 것입니다.

18척인가 181척인가

같은 백과사전 안에서도 숫자가 갈립니다.

항목길이너비
「대연동」18척 (약 5.45m)125척 (약 37.9m)
「생천언」181척 (약 54.9m)125척 (약 37.9m)

「생천언」 항목은 한문 원문을 그대로 옮겨 두었습니다. 長一百八十一尺廣一百二十五尺 — 백팔십일 척입니다.

18척은 약 5.45m입니다. 너비로 적힌 37.9m보다 훨씬 짧아 길이와 너비가 뒤집힌 꼴이고, 큰 못이라는 이름과도 어긋나며, 물 깊이 2m에 둘레 113m라는 다른 기록과도 맞지 않습니다. 181척에서 가운데 백(百)이 빠진 채 옮겨진 것으로 보는 편이 앞뒤가 맞습니다.

181척으로 보면 약 55m × 38m. 표준 규격 수영장(50m × 25m)보다 조금 더 넓고, 깊이는 어른 키를 넘습니다.

1952년 사진에는 물이 차 있다

1952년 대연동 컬러 사진. 골짜기에 물이 찬 못과 아래쪽 마을, 왼쪽 아래 미군 막사 단지가 보인다
1952년 대연동. 못 아래로 곧은 둑이 지나가고 그 아래가 못골 마을이다. 앞쪽 건물군은 한국전쟁 때 이 자리를 쓰던 미 제5공군사령부. 자료: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 / 공유마당(CC BY)

산자락 사이 골짜기에 물이 고여 있습니다. 못 아래쪽 가장자리를 따라 곧은 둑이 지나가고, 그 아래로 마을이 붙어 있습니다. 자연 늪이 아니라 관리되던 저수지였다는 뜻입니다.

같은 시기 하늘에서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1950년 12월 3일에 촬영한 항공사진(8코스 5영상, 축척 1:25,000)입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해 겨울에도 못에는 물이 차 있습니다.

사라진 시점은 1963년과 1973년 사이

같은 도엽의 지형도를 발행 연도별로 놓고 보면 이렇게 됩니다.

지도지명 표기
1956년판 (1:50,000)있음大淵池 · 池谷 · 古洞谷 · 大淵里
1963년판 (1:50,000)있음, 작아짐大淵池 이름이 빠지고 한글 못골만 남음
1973년 편집판 (1:50,000)없음大淵一洞·四洞 격자 시가지

축척이 다른 계열에서도 같은 답이 나옵니다. 1:25,000 지형도를 같은 화면·같은 배율로 놓고 연대만 바꿔 보면, 1960년대판에는 못이 파랗게 남아 있고 1970년대판에는 사라집니다.

1960년대 1:25,000 지형도. 대연동 위쪽에 파란 못이 그려져 있다
1960년대 1:25,000 지형도 — 못이 파랗게 남아 있다.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1970년대 1:25,000 지형도. 같은 자리에 못이 없고 격자형 시가지가 들어서 있다
1970년대 같은 자리 — 못이 없다. 못골이라는 지명만 남았다.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서로 다른 축척, 서로 다른 계열의 자료가 같은 구간을 가리킵니다. 남구 토지구획정리로 못이 메워졌고, 지금은 지표에 흔적이 없습니다.

아랫못 자리는 대연초등학교 부근이다

1960년대 지형도의 못 영역을 같은 축척의 현재 지도에 겹쳐 보면, 지금의 대연초등학교 서쪽, 못골시장 북쪽 주택가가 나옵니다. 문헌이 아랫못을 대연초등학교 부근으로 지목하는 것과 맞습니다.

1956년 지형도에서도 제가 찾은 못은 大淵初校 표기 바로 왼쪽에 붙어 있습니다. 지도 두 계열과 문헌이 같은 자리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현재 지도에 옛 못의 자리와 남구청 자리를 표시한 그림
위쪽 표시가 못이 있던 자리, 아래쪽이 지금의 남구청 일대.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역사지도에 대조
1956년 지형도에 못·시장·남구청 위치를 표시한 그림
1956년 지형도 위에 못·시장·남구청 자리를 표시했다.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옛 못 자리를 남구청 자리로 적은 자료도 있습니다. 두 지점은 직선거리로 700m 남짓입니다. 못골이라는 이름이 골짜기 전체를 가리키기도 해서, 그 사이 저지대를 뭉뚱그린 표현으로 보입니다.

못 옆 그 자리는 학교였다가 구청이 되었다

1952년 사진에서 못 아래에 늘어선 건물군은 한국전쟁 때 미 제5공군사령부가 쓰던 곳입니다. 공유마당에 올라온 같은 시리즈 자료의 제목이 그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군이 먼저가 아닙니다. 같은 시리즈에 「미 제5공군사령부에서 사용하던 옛 부산공업학교 강당」이라는 사진이 따로 있습니다. 학교가 먼저 있었고 전쟁 중에 미군이 그 시설을 쓴 것입니다.

1960년대 부산공전교, 1980년대 부산개방대학, 2011년 남구청으로 이름이 바뀌는 같은 자리의 지도 세 장
같은 자리, 이름만 바뀐다. 1960년대 부산공전교 → 1980년대 부산개방대학 → 지금의 남구청. 자료: 국토지리정보원 1:25,000 지형도

이후 내력은 지도와 대학 연혁이 맞물립니다.

시기그 자리
1952년미 제5공군사령부(옛 부산공업학교 시설)
1960년대부산공전(부산공업전문학교)
1983년부산개방대학으로 승격
1988~1993년부산공업대학 → 부산공업대학교
1996년부산수산대학교와 통합해 부경대학교 출범
1999년남구청이 못골캠퍼스 부지 매입
2000년대~남구청

걸어 보면 골짜기라는 게 느껴진다

2026년 9월 10일 오후, 대연역에서 출발해 황령산 자락을 한 바퀴 돌고 못골시장에서 마쳤습니다.

거리5.11km
시간1시간 11분 (평균 4.3km/h)
고도44m ~ 122m
코스대연역 → 진남로 오르막 → 번영로 지하보도 → 부산예술대 뒤편 → 못골 옛 상권 → 못골시장

같은 대연역에서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범일역에서 대연역까지 5km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쪽은 동천 산책로와 문현고개를 지납니다.

기록한 고도를 보면 가장 낮은 지점들이 시장 일대에 몰려 있습니다. 산과 붙은 길은 100m를 넘는데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습니다. 못골의 골이 골짜기라는 뜻이라는 게 걸어 보면 숫자로 확인됩니다.

오르막에서 왼쪽 아래를 내려다보면 골목이 뚝 떨어집니다. 이 정도로 파인 지형이면 아래쪽에 물이 고였을 수 있겠다 —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자리에서 든 생각 때문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정직하게 남깁니다.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글에 반영하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대연동의 대연은 무슨 뜻인가요?

큰 대(大)에 못 연(淵)을 씁니다. 말 그대로 큰 못이라는 뜻입니다. 옛 이름은 못골이었고 한자로는 못 지에 골 곡을 쓴 지곡(池谷)으로 적었습니다. 문헌에 남은 못 이름은 생천언(生川堰)이고, 1956년 지형도에는 못 자체에 大淵池라고 적혀 있습니다.

대연동에 못이 몇 개 있었나요?

셋입니다. 가장 크고 오래된 아랫못(생천언)은 지금의 대연초등학교 부근에 있었고, 1930년 일제가 수리조합을 만들어 그 위쪽에 제방을 쌓아 윗못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고동골 못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1956년 지형도에도 大淵池 왼쪽에 古洞谷이라는 지명이 적혀 있습니다.

그 못은 언제 사라졌나요?

1960~1970년대 토지구획정리 때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1:50,000 지형도를 보면 1963년판에는 못이 남아 있지만 1973년 편집판에는 없고 그 자리에 격자형 도로가 들어서 있습니다. 축척이 다른 1:25,000 지형도에서도 1960년대판에는 못이 파랗게 칠해져 있고 1970년대판에는 사라집니다.

동래부지에 적힌 못 크기가 자료마다 다른 이유는 뭔가요?

같은 백과사전 안에서도 길이를 18척으로 적은 항목과 181척으로 적은 항목이 함께 있습니다. 생천언 항목은 한문 원문까지 옮겨 두었는데 長一百八十一尺, 즉 181척입니다. 18척은 약 5.45m로 너비 125척(약 37.9m)보다 훨씬 짧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181척에서 가운데 백(百)이 빠진 채 옮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대연동을 걸어서 둘러보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대연역에서 출발해 황령산 자락을 돌아 못골시장까지 5.1km, 천천히 걸어 1시간 11분 걸렸습니다. 해발 44m에서 122m까지 오르내려 오르막이 제법 있습니다. 전 구간 포장된 길이라 운동화면 충분합니다.

참고 자료

이 글은 일반적인 생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날짜·제도·시세 등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결정 전에는 관련 기관의 공식 안내를 한 번 더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최종 갱신: 2026년 9월 12일.